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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쿠션당구

그때는 잔소리인 줄 알았다. 26점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그 사람의 한마디

by feel4u1004 2026. 8. 10.

26점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그 사람의 한마디

2024년 11월이었습니다. 거의 30년 만에 다시 당구장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당구를 배웠고, 4구 500점 정도까지 쳤던 기억은 있었지만 어느 순간 당구가 재미없어졌고, 그렇게 큐를 내려놓은 채 몇십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다시 당구장을 찾은 곳이 지금도 다니고 있는 진양당구클럽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다시 당구를 이렇게 오래 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더구나 제가 찾아간 곳에는 제가 한 번도 제대로 쳐보지 못했던 3쿠션 전용대, 흔히 말하는 대대가 있었습니다. 당구장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예전에 4구 500점 정도 쳤는데, 몇십 년 만에 다시 치는 겁니다. 대대에서는 몇 점 놓고 치면 될까요?'

돌아온 대답은 20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대 20점으로 다시 당구를 시작했습니다.

30년 만에 다시 잡은 큐

처음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당구를 쳤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쉬운 공은 생각보다 잘 맞았고, 큐를 잡고 공을 바라보는 것도 아주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3쿠션은 달랐습니다. 30년이라는 시간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3쿠션 전용대의 특성을 전혀 몰랐습니다. 공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쿠션을 맞고 돌아오는 공의 움직임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생각한 곳으로 공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재미있었습니다. 공 하나가 맞고, 쿠션을 돌아 다시 다른 공을 맞는 그 순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고 계속 당구장을 찾게 됐습니다. 매일 당구장에 오는 단골손님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분들과 게임도 하나둘 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유난히 공을 잘 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당구장에서 가장 잘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30점을 놓고 치는 고수였습니다. 그분과 가끔 게임을 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고수와의 승률이 꽤 괜찮았습니다. 물론 실력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잘 쳐서 이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수는 당구를 치는 저에게 꼭 '당구는 살살 치는 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 말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고수도 세게 칠 때는 세게 치잖아', '왜 자꾸 나한테 살살 치라고 하지?' 심지어는 제가 하수인데 자기에게 가끔 이기니까 저를 살짝 긁는 말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본인이나 잘 치지, 왜 내 공까지 신경 쓰는 거야'라고 생각한 저는 제 방식대로 쳤습니다. 세게 칠 공은 세게 치고, 빠르게 보내야 할 것 같으면 힘 있게 쳤습니다. 그분이 아무리 살살 치라고 해도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계속했는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이 떠올랐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20점으로 시작했던 저는 어느새 26점이 되었고 그동안 당구를 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스템도 배웠고, 당점도 배웠고, 두께도 배웠으며 공의 움직임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그냥 '감'으로만 쳤던 공을 이제는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조금씩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 고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당구는 살살 치는 거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말은 정말 공을 무조건 약하게 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세게 쳐야 하는 공은 세게 쳐야 합니다. 공의 배치에 따라 힘 있게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원하는 위치까지 수구를 보내기 위해 어느 정도 속도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살살'이라는 말 자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힘을 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당구를 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공을 세게 칠수록 내가 계산했던 길에서 공이 더 많이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쿠션을 이용하는 공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한 포인트로 공을 보내더라도 힘이 강해지면 입사와 반사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커지고, 결국 처음 계산했던 길과 다른 곳으로 공이 빠질 수 있습니다. 세게 치려면 단순히 힘만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세게 쳤을 때 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까지 계산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그 사람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고수는 공을 약하게 치라고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공을 필요 이상으로 세게 치지 말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고수의 말은 그때보다 나중에 들리는 모양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는 내가 당구를 잘 몰랐으니 그 사람의 말이 당연히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 겁니다. 20점짜리 초보자가 30점 고수의 말을 듣고도 '왜 저렇게 치라고 하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그런데 사람이 참 신기합니다. 직접 경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해보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예전에 들었던 말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잔소리처럼 들렸던 말이 나중에는 조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 고수릐 '살살 쳐'라는 말이 그랬습니다. 지금도 공 하나를 세게 쳤다가 예상보다 크게 돌아가 버리면 그 사람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아... 그 사람이 이걸 보면 또 살살 치라고 했겠구나' 그러면 혼자 피식 웃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말없이 떠났다

어느 날 그분이 당구장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사를 갔더군요. 그런데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고 했습니다. 당구장에서 그분을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꽤 오래 알고 지냈는데 아무 말 없이 가버렸다며 서운해했습니다. 저 역시 조금 아쉬웠습니다. 사실 특별히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가끔 게임을 했고, 당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사람이 제게 몇 번씩 같은 말을 했던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사람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지금의 제가 그때보다 당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예전에는 그냥 흘려들었던 그 한마디가 이제는 당구를 칠 때 가끔씩 떠오르니까요.

"당구는 살살 치는 거야."

그 사람은 지금 제가 26점을 치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요. 20점으로 시작했던 제가 몇 년 사이 조금씩 점수를 올렸다는 것도, 그때 자신이 했던 말이 지금까지 제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것도 모를 겁니다. 그래서 가끔 상상해봅니다. 언젠가 정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아마 저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형님, 이제 그때 왜 살살 치라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마 예전처럼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내가 그때부터 살살 치라고 했잖아." 그 말을 들으면 저도 웃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그 말 한마디를 조금 더 오래 마음에 담아둘 것 같습니다.

 

당구를 다시 시작하고 나서 배운 것은 참 많습니다. 어떤 시스템을 배웠는지, 몇 점을 올렸는지, 어떤 공을 성공시켰는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그런 것들은 조금씩 희미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신 오래 남는 것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심코 건넨 한마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 만에 다시 잡은 큐, 20점으로 시작해서 어느덧 26점. 그 사이 수많은 공을 쳤고 수많은 게임을 했지만, 지금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의외로 어려운 시스템도, 멋진 득점도 아닙니다. 어느 날 당구장에서 고수가 제게 무심코 제게 건넸던 짧은 한마디입니다. "당구는 살살 치는 거야." 어쩌면 당구도, 사람도... 조금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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