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전국대회에서 4강까지 올라갈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24점짜리 동호인이 30점, 40점 치는 고수들을 차례로 꺾는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실제로 제 눈앞에서, 제 손으로 벌어졌습니다. 전주시에서 열린 동호인 전국 당구대회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전국대회, 핸디캡 시스템으로 중점자도 도전할 수 있다
당구 대회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흔히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전국대회면 당연히 고수들만 나오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동호인 대회는 핸디캡(Handicap) 시스템을 적용합니다. 여기서 핸디캡이란 참가자의 실력 차이를 점수로 보정해 주는 방식으로, 애버리지가 낮은 선수에게 유리한 조건을 부여하여 실력 차이를 줄여주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저처럼 24점짜리도 30점짜리 고수와 공정하게 겨룰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3쿠션 전용대(Carom Billiards Table)에서 당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 대회에 나갔습니다. 전용대란 4구나 포켓볼 대신 3쿠션 전용으로 설계된 테이블로, 쿠션의 탄력과 천의 밀도가 일반 중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처음 전용대에 적응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고, 애버리지(Average)를 20점에서 시작해 23점, 24점으로 올리는 데 약 6개월이 걸렸습니다. 여기서 애버리지란 한 이닝당 평균 득점을 의미하며, 당구 실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제가 참가한 전주 전국대회는 예선 5승을 거두어야 본선 32강에 오르는 구조였습니다. 토요일 예선에서 2라운드 탈락의 쓴맛을 봤고, 그날 밤 회장님과 임원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요일, 다시 예선에 도전했습니다.
대회에서 핸디캡을 적용받아 경기를 이어가며 제가 느낀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핸디캡 시스템 덕분에 중점자도 고수와 경쟁이 가능하다
- 첫 경기 승리가 다음 경기의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중요하다
- 응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집중력과 흥분 사이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 예선 5연승이라는 목표는 체력과 멘탈을 동시에 요구한다
실제로 3번째 경기를 이겼을 때, 다른 구장에서 탈락하고 돌아온 동료들의 응원이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루틴(Routine)이 흐트러지지 않는 한 분명히 퍼포먼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스포츠 심리 연구에 따르면, 관중의 존재와 응원은 선수의 각성 수준을 높여 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국민체육진흥공단)
애버리지 24점이 30점·40점 고수를 이긴 이유
일반적으로 당구는 실력이 곧 결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대회 당일만큼은 그 공식이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핸디캡이 적용되는 동호인 대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본선 32강에서 만난 상대는 26점 선수였고, 16강 상대는 30점 고수였습니다. 제가 그 당시 24점이었으니 누가 봐도 제가 불리한 매치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경기를 모두 이겼습니다. 솔직히 이건 저 자신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분석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핸디캡으로 인한 점수 보정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예상 밖의 상황에서 오히려 더 편안하게 경기를 풀었다는 점입니다.
8강에서 만난 28점 선수도 꺾었을 때, 당구연맹 회장님과 임원들이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저도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닝(Inning)이 쌓일수록 흐름이 상대방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고, 그 흐름을 끊지 않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닝이란 양 선수가 번갈아 가며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 한 단위를 의미합니다. 이닝 관리가 당구 대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그날 처음 몸으로 배웠습니다.
4강 상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과거 PBA(Professional Billiards Association, 한국프로당구협회) 프로 선수 출신의 40점 고수였습니다. PBA란 대한민국의 프로 당구 리그로, 국내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활동하는 공식 협회입니다. 13이닝 동안 저는 11점을 쳤고, 그건 제가 생각해도 잘 친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같은 13이닝 동안 30점을 완성했습니다. 애버리지로 환산하면 상대는 2.3, 저는 0.85 수준이었습니다. 핸디캡이 있어도 이 격차는 메울 수가 없었고,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상금은 200만 원이었고, 우승자는 1,000만 원을 가져갔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를 이긴 그 40점 고수가 8강전과 결승전에서는 애버리지 1점 초반대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저와의 경기가 아닌 다른 라운드에서처럼 쳤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게 바로 대회의 묘미이자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당구연맹(Korea Billiards Federation)이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동호인 대회 등급 기준에도 실력 외 컨디션 변수를 고려한 핸디캡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출처: k-billiards.or.kr )
전국 1,024명 이상이 참가한 대회에서 4강이라는 결과는, 저에게는 점수나 상금보다 훨씬 큰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 이후 여러 지방 대회를 더 나가봤지만, 그날만큼의 박진감과 집중의 밀도는 아직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당구 실력을 키우고 싶은 분이라면, 지역 당구연맹 주관 대회부터 출전해보시길 권합니다. 고수들의 경기를 직접 옆에서 보고, 그 압박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지켜내는 경험은 어떤 연습보다도 빠르게 실력을 끌어올려 줍니다. 대회는 단순히 이기고 지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정직한 무대입니다. 저는 그날을 아직도 생각하면 설레고, 그 설렘이 지금도 당구채를 잡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